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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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삼국 시대 말기, 7세기 초 또는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이다. 본존불은 여래 입상이며, 좌우에는 보살 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1923년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에 모아 세웠다. 조각 솜씨가 뛰어나 7세기 신라 불상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인간적인 정감과 종교적 신비가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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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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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한글 |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조선글 | 해당사항 없음 |
한자 |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
가타카나 | 쿄-쥬- 하이도- 세키조- 뇨라이산존류-조- |
히라가나 | 케이슈우 하이도우 세키조우뇨라이산존류ウゾウ |
로마자 표기 | rr: Gyeongju Baedong Seokjoyeoraesamjonipsang mr: Kyŏngju Paedong Sŏkchoyŏraesamjonipsang |
영어 명칭 | Stone Standing Buddha Triad in Bae-dong, Gyeongju |
상세 정보 | |
지정 번호 | 보물 제63호 |
지정 날짜 | 1963년 1월 21일 |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65-1번지 |
시대 | 삼국 시대 |
소유 | 국유 |
수량 | 3구 |
문화재청 ID | 12,00630000,37 |
관련 정보 | |
관련 링크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관광공사 - 慶州歴史遺跡地区 |
참고 | 경주역사유적지구 |
2. 역사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삼국 시대 말기인 7세기 초나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8][9][10] 조선 시대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당 터 근처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2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11][5]
2. 1. 발견 및 이전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삼국 시대 말기[8], 7세기 초(제1사분기)[9] 혹은 중엽의 것으로 추정된다[10].조선 시대(1392-1897년)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각 석불은 부근의 불당 터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11]. 1923년에 현재의 위치에 안치되었는데[5], 당초에는 경주의 박물관으로 이송할 계획이었으나, 그 무게 때문에 도중의 다리를 통과하지 못하여 현재의 장소에 세워졌다고 한다[10]。2. 2. 제작 시기
3구의 석불은 삼국 시대 말기[8], 7세기 초(제1사분기)[9] 혹은 중엽의 것으로 추정된다[10]3. 특징
이 불상은 조각 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다만, 좌협시(관음보살[3])는 다른 두 상에 비해 약간 다른 취향이라는 견해도 있다.[2]
3. 1. 전체적인 특징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 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3][8][12]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3]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중존(본존)은 여래(석가여래〈혹은 아미타여래〉)[11] 입상이며, 좌우의 협시는 보살 입상이다.[5]
중존은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으며,[9] 높이는 2.7m[1](2.75m[13], 2.78m[9])이다. 코 끝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원만한 모습에 미소(아르카이크 미소)[1], 어린아이 얼굴에 몸은 짧고[14] 통통하며,[3][15]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는[1] 수인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8] 육계(정계)는 2중으로[15] 넓고 낮으며, 그 아래에만 나발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견(두 어깨를 덮는)이지만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에 약간 걸쳐 있으며,[9][14] 두꺼운 법의의 의문(衣紋)은 고졸하며,[8] 가슴에서 발까지 5개의 U자형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9][14] 광배는 없는 듯 보이지만,[9] 뒤에는 좁은 거신광(머리 뒤의 광배)이 있다.[8] 코의 결손은, 석불의 코가 불임증에 효험이 있다는 속신에 의해 채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2]
좌협시는 높이 2.4m[1][16](2.36m[13], 2.35m[9])이다.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으며,[2] 약간 호리호리하며,[9][15] 앞면이 조금 마모되었지만, 뒷면의 의문은 양호하게 남아 있다. 면상은 미소를 띠고 있으며, 후두에 원형의 두광(머리 뒤의 광배)이 있다. 법의는 비교적 얇고,[8] 장식은 적다.[8]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3] 왼손을 내려 보병(보물 병)을 든다.[8][15]
우협시는 총고 약 2.45m[1][17](2.36m[13], 2.93m[9])이며, 무릎 아래에서 절단된 입상의 상하를 연결하여, 거의 완전한 형태로 양호하게 보존된다.[8] 풍만하고 여성적이며,[1] 왼손에 든 연화(연꽃)를 왼 어깨에 올리고, 큰 화만(수식)[3][15]을 발목까지 늘어뜨리고, 연화좌에 서 있다. 어린아이 얼굴이며,[14] 코 끝에 손상이 있지만 면상은 미소를 띠고, 후두의 원형 두광에는 화문(꽃 무늬)과 화불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8]
3. 2. 본존불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이중으로 되어 있고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11][5][10][3][8][12][2]하나의 돌로 조각되었으며[9], 높이는 2.7m(혹은 2.75m, 2.78m)이다.[1][13][9] 코 끝에 약간 손상이 있지만 원만한 모습에 미소(아르카이크 미소)를 띄고 있다.[1] 몸은 짧고[14] 통통하며[3][15],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는[1] 수인(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8] 육계(정계)는 2중으로[15] 넓고 낮으며, 그 아래에만 나발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옷은 통견(두 어깨를 덮는)이지만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에 약간 걸쳐 있으며[9][14], 두꺼운 법의의 의문(옷주름)은 고졸하며[8], 가슴에서 발까지 5개의 U자형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9][14] 광배는 없는 듯 보이지만[9], 뒤에는 좁은 거신광(머리 뒤의 광배)이 있다.[8] 코가 손상된 이유는 석불의 코가 불임증에 효험이 있다는 속설에 의해 채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2]
3. 3. 좌협시 (관음보살)
왼쪽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3]하나의 돌로 조각되었으며,[2] 높이는 2.4m,[1][16] 2.36m,[13] 2.35m[9]이다. 약간 호리호리하며,[9][15] 앞면이 조금 마모되었지만, 뒷면의 의문은 양호하게 남아 있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 뒤에는 원형의 두광(머리 뒤의 광배)이 있다. 법의는 비교적 얇고,[8] 장식은 적다.[8]
3. 4. 우협시
오른쪽 보살상은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띠고 있다.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 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3]높이는 약 2.45m[1](2.36m[13], 2.93m[9])이며, 무릎 아래에서 절단된 입상의 상하를 연결하여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 상태가 좋다.[8] 풍만하고 여성적인[1] 이 보살상은 왼손에 든 연꽃을 왼쪽 어깨에 올리고, 큰 화만(花鬘)을 발목까지 늘어뜨리고 연화좌(蓮華座)에 서 있다. 어린아이 얼굴[14]이며, 코 끝에 손상이 있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머리 뒤의 원형 두광(頭光)에는 꽃 무늬와 화불(化佛)이 조각되어 있다.[8]
4. 평가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 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1]
조각 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1]
참조
[1]
서적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
2016
[2]
서적
1988
[3]
웹사이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http://www.heritage.[...]
문화재청
2023-06-03
[4]
웹사이트
慶州歴史遺跡地区[ユネスコ世界遺産(文化遺産)](경주역사유적지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https://japanese.vis[...]
한국관광공사
2023-06-03
[5]
서적
1973
[6]
서적
1988
[7]
서적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
2016
[8]
서적
1973
[9]
웹사이트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慶州 拜洞 石造 如來 三尊 立像)
https://encykorea.a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6-03
[10]
서적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
2016
[11]
서적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
2016
[12]
웹사이트
韓国歴史散策 (1): 水と石の遺産(慶州)
https://www.asahi.co[...]
朝日放送テレビ
2023-06-03
[13]
서적
1991
[14]
서적
1978
[15]
서적
1991
[16]
서적
1988
[17]
서적
1988
[18]
웹사이트
華鬘
https://kotobank.jp/[...]
2023-06-03
[19]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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